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루트비히 폰 팔켄하우젠 (문단 편집) === [[제1차 세계 대전]]과 그 이후 === 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, 팔켄하우젠은 보병대장의 계급으로 군으로 복귀하였다. 그는 에르자츠 군단(Ersatz Corps)의 총사령관이 되었다. 로렌에서 자신의 부하들을 이끌었다. 첫 반년간의 공으로 1915년 8월 23일에는 푸르 르 메리트를 받았고 1916년 4월 15일에는 푸르 르 메리트에 백엽을 추가하였다. 팔켄하우젠은 연안방어상급사령부의 사령관이 되어 함부르크에서 해안선 방어에 성공하고, [[루프레히트 폰 바이에른|루프레히트]]의 후임으로 제 6군의 사령관이 되었다. 하지만, [[비미 리지 전투]]에서 캐나다군에게 패배한 이후 [[파울 폰 힌덴부르크|힌덴부르크]]에 의해 해임당했다. 이후 1917년 5월, 팔켄하우젠은 벨기에의 총독이 되어 [[벨기에 학살]]에 한 몫을 하였다.[* 여담으로 그의 조카, [[알렉산더 폰 팔켄하우젠]]도 벨기에의 총독으로 지냈다. 하지만, 알렉산더는 그의 삼촌과는 다르게 민간인을 학살하지는 않았다.] 팔켄하우젠은 전후에도 살아남아 1936년 나치 독일에서 사망하였다. [[분류:독일제국군/군인]][[분류:1844년 출생]][[분류:1936년 사망]][[분류:제1차 세계 대전/군인]][[분류:독일의 남작]][[분류:브란덴부르크 주 출신 인물]]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